본문 바로가기
연기 수업/수업 기록

#0 연기를 처음 생각 했던 날

by 산티아Go 2020. 12. 18.
반응형

고등학교 시절. 수업 시간 도 중.

 

 

 

나는 전주에서 태어나 너무나도 평범한 삶을 살던 학생이었다. 

 

초, 중, 고 아무런 사고도 일탈도 없이 정말 평범한 학생. 이런 내가 연기를 하고 있다고?

 

당시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깜짝 놀랄 거다.

 

 

 

고2 수업시간 어느 날, 우연히 수업시간에 뮤지컬의 한 장면을 봤다. 

 

'뭘까 이 떨림은?' 살면서 처음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경험했다.

 

'아, 이게 내가 가야 하는 길이구나!, 내 진로를 찾았어!!'라고 생각할 줄 알았다면 택도 없었다.

 

서울 사람이 아닌 지방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얼마나 지방에서의 예술이 가혹한지.

 

'에? 네가 연기를 해? 계란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정신 차려..' 

 

이런 말에 화가 나기는커녕 바로 수긍해버렸다. 사실은 말해본 적도 없다. 그만큼 지방에서의 예술은 너무나 먼 이야기다.

 

'그렇지? 내가 무슨 연기야. 연기는 특별한 사람들,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하는 거야. 난 못해'

 

나의 꿈은 여기서 한 번 끝났었다.

 

 

 

고3. 너무나도 평범했던 나는 경찰행정학과를 준비한다.

 

이유는 두 개. 운동을 좋아하니까, 현실적으로 경찰은 안정적이고 명예로우니까.

 

수능을 보고 대학을 3곳 썼다. 경찰행정, 영어영문, IT 어쩌고(쓰라고 해서 썼다)

 

저 한편에 보이는 영롱한 그 글자. "연극영화과"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곳. 부러운 곳. 하지만 도전할 수 없는 곳.

 

나는 한 번 더 설렜지만 못 본 채 외면했다.

 

결과를 기다리던 나는 다행히 경찰행정학과에 붙었고 하루 뒤, 영어영문학과에도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이때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된다.

 

영어영문학과? 연극영화과? 비슷한데..? 문학을 배우면 공연도 배우고, 그쪽 진로를 염탐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부모님께 경찰행정학과를 포기하고 영문과를 가겠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영문도 모른 채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셨을 거다.

 

경찰을 한다는 놈이 경찰행정학과에 안 가고 영문과에 가겠다고? 이때 처음으로 부모님과 큰 다툼이 있었던 것 같다.

 

 

 

영문과에 진학하고 간잽이 계란이는 슬쩍 연극 동아리에 들어갔다.

 

그때의 그 가슴 뜨거움이 순간의 즐거움이 아니었구나. 

 

'아, 이제는 진짜 내가 가야 할 길이야! 지금이 아니고서는 안돼!!'

 

이번에도 택도 없었다. 이제 갓 자유를 맛본 계란이에게 그런 큰 선택을 할 용기도 부모님의 눈초리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들어갔다. 

 

'이건 아닌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분명히 돈을 벌고 취미 활동도 하는데 이 공허함은 뭐지?'

 

'내가 벌고 있는 이백만 원 정도의 월급.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충분히 벌 수 있지 않을까?'

 

직장에 들어가 2년의 세월을 보내며 어느 정도 자금을 마련한 나는 이제야 기로에 섰다.

 

'더 이상은 늦을 수 없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쳐다도 보지 말자.'

 

의외로 결과는 간단했다. 나는 서울에 방을 잡았고 연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부모님도 이해를 해주셨다.

 

 

 

이렇게 간단한 일을 왜 일찍 못했을까? 처음부터 말했어도 쉽게 연기를 할 수 있었을까?

 

요즘엔 그런 생각이 든다.

 

연기에도 숙성이 필요하다. 대사를 뱉기 전 숙성을 해야만 비로소 나의 말로 뱉을 수 있다.

 

나는 배우의 꿈을 18살부터 26살까지 8년을 숙성시켰다.

 

이제는 배우라 말할 용기가 생겼다.

 

반응형

'연기 수업 > 수업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5 범위 만들기  (0) 2020.12.25
#4 분석의 중요성 1  (0) 2020.12.22
#3 내 목소리로 연기하자  (0) 2020.12.21
#2 연기를 재 배열하다  (2) 2020.12.20
#1 연기를 처음 접할 때  (0) 2020.12.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