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을 분석하고 캐릭터를 분석하는 일.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단계이다.
이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낸다.
시나리오에 불과했던 작품을 분석을 통해 세계관을 구축해 나간다.
내 캐릭터가 지구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만 같은 생명력을 부여한다.
나를 잠시 내려놓고 내가 그 캐릭터의 세상을 구축해서 캐릭터의 삶을 잠시 엿보는 것이다.
분석을 하면 할수록 그 세계관은 구체화되고 엿보기 수월해진다.
그런 식으로 엿보다 보면 캐릭터의 세계관에서 잠시 나를 허락해주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을 보여주는 것이 연기이다.
사실 분석이라는 것은 배우라면 모두가 자연스레 진행한다.
깊이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배우는 집요해야 한다. 나의 세계관에 빈틈을 주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 캐릭터의 삶에 질문을 했을 때 나의 삶인 양 바로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하며 합리화하려는 순간 캐릭터의 생명력이 붕괴된다.
이렇게 세상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고뇌하는 시간은 늘어난다.
이렇게 배우들이 자연스레 무거워지는 것이다.
배우는 관찰하고 생각하는 직업이다. 생각이 배우들의 힘이고 원천이다.
분석은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어떻게 , 무엇을 해야 한다고 규정 지을 수 없다.
캐릭터의 배경, 시대, 성격, 가치관, 외형, 관계, 습관 등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들이 있고 만약 집요한 사람이라면 만들면서도 구멍 난 부분들을 느낄 것이다. 그런 부분들을 스스로 계속해서 채워주어야 한다.
그렇게 분석하다 보면 캐릭터의 인생 하나가 완성이 되는데 나는 이것이 옳은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관건은 그 삶을 얼마나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분석을 하면서도 어느 정도 가져올 수 있지만 분석 이후에도 더욱 공감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앞에서 말한 것처럼 엿보는 것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세계를 허락해 주는 순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펭수라는 작품의 펭수역을 분석해야 한다면
펭수에 대한 기본 적인 정보를 모두 습득한다.
기본정보 - 8월 8일 생 10살, 남극 펭씨
신체정보 - 키는 210cm, 몸무게 93.9kg, 시력 9.6, 성별 없음
가치관 - 웃어라, 행복해질 것이니
좋아하는 것 - 삼국지, 거북이의 '비행기', 국밥
싫어하는 것 - 치킨
특기 - 요들송
최고의 크리에이터가 되기 위해 남극에서 한국까지 헤엄쳐 왔다.
이런 기본 정보를 작품에서 습득했다면 배우의 상상력으로 혹은 연출가와의 상의, 작가와의 이야기를 통해 살을 붙이고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나의 가족은 아빠 펭귄(펭창식), 엄마 펭귄 (귄수정), 동생 펭귄(펭숙)으로 이루어져 있다.
남극에서 평범한 집안이었던 우리 집은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남의 일 같던 지구온난화로 인해 우리의 터전이 마비되기 시작했고 곳곳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없었다.
집에서 가족들과 치킨을 먹던 도 중 집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날의 사고로 동생의 날개 한쪽이 심하게 다쳤다.
우리 가족은 갑작스레 집을 잃고 허름한 얼음더미에 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우리 부모님은 항상 웃으시며 가족을 챙기셨다.
우연히 지나가다 본 티브이에서는 뽀로뭐시기라는 놈이 유명세를 타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 저거다. 저거면 우리 가족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날 밤 나는 가족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조용히 집을 나왔다.
도착지는 크리에이터들이 성공하기 좋은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나의 이미지를 살릴 수 있는 'EBS 공개 오디션'
그렇게 나는 몇 달을 걸쳐 힘겹게 수영하며 대한민국에 도착했다.
만일 'EBS 오디션' 장면의 극을 올렸다면 이런 식으로 분석을 진행했을 것이다.
물론 이건 일부에 불과하다.
펭수가 남극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부딪힌 사고들, 가족들과의 관계, 어떻게 요들송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저러한 가치관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 등등 계속해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만일 분석에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면 캐릭터의 말 한마디, 동작 하나하나에 이유가 생길 것이고 그 연기는 진짜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분석할 때 가장 큰 희열을 느낀다. 배역과 내가 '싱크로나이즈'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분석은 배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창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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