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고요함을 즐기자

 

많은 초보 배우들이 힘들어하는 것이 바로 나에게 집중된 시선을 지우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분명 나를 봐주기를 원하고 멋있는 배우가 되기를 원해서 연기를 시작했지만

 

실제 연기는 멋있으려 하면 안 되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부담스럽기만 한다.

 

또한 잘해야 한다는 욕심은 얼마나 큰지 무대에 선 나를 순식간에 잡아먹는다.

 

잘해야지, 집중해야지, 멋있어 보여야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연기는 그 자리에서 끝난다.

 

우리가 오로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지금까지 내 캐릭터를 공감하기 위해 했던 분석들과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이어야만 한다.

 

나머지 외 잡것들은 모두 내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나는 그 인물이 되어야만 하고 인물이 되기 위해 숱한 노력으로 분석을 했었고 나는 이 장면을 연기하기 위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본인은 알고 있다.

 

그 목적 하나만 가지고 연기에 임해야 한다. 

 

감동을 느끼고 배우가 멋있어 보이고 감정적 희열을 느끼는 건 관객의 몫이다.

 

배우가 감동을 선사하려는 순간 아이러니하게 관객은 못 봐주는 연극, 연기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이런 몰입과 집중이 말처럼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오늘은 나의 집중을 도와주는 요소들에 집중해보려 한다.

 

이것은 사람마다 다른데 나에게 가장 집중을 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적막, 고요함이다.

 

처음에는 적막이 무섭고 두렵기만 했다. 

 

어찌 됐든 배우로서 해야만 하는 대사가 있고 행동이 있는데 그 행위를 멈췄을 때 오는 적막은 나를 다급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적막, 고요함을 느낀 후로는 그 순간마다 나에게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이곳을 컨트롤하고 있다는 느낌, 내가 진정한 나의 말을 할 때까지 스스로 기다릴 수 있다는 것.

 

고요함이 나에게 준 선물이었다.

 

 

 

또 다른 요소는 조명이었다. 

 

적막과 함께 따뜻한 조명이 나를 비추고 있으면 캐릭터로써의 내가 살아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집중을 할 수 있는 무언가는 누구나 다르고 굉장히 다양하다.

 

스타니슬랍스키의 배우 수업에서는 예기치 못한 무엇이 배역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고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캐릭터를 연기할 때,  본인이 집중해서 외웠던 대사를 한다 하더라도 결국 만들어진 상황이기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다.

 

그때, 예기치 못했던 테이블 위에 병이 바닥으로 떨어져서 배역이 그 병을 자연스레 주웠을 때 배역은 캐릭터로써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병이 떨어진 것은 만들어 놓은 상황이 아니라 예기치 못한 자연의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상황(병이 떨어진 것)을 처리하는 배역은 배역으로써 실제의 상황(떨어진 병을 줍는 것)을 맞닥뜨린 것이기 때문에 캐릭터에 생명력이 불어넣어진 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배역들이 모든 장면에서 테이블에 병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바보 같은 짓을 할 수는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예기치 못한 상황들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사소한 것이어도 좋다.

 

 

 

연기 도중 갑자기 날아든 깃털, 먼지를 치운다던지, 삐뚤어진 의자를 바로잡는다던지 등의 예기치 못한 자연스러운 상황을 캐릭터로써 살아내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대사를 해야만 하기 때문에 의자가 삐뚤어져도 그냥 앉을 거야.'

 

'나는 여기로 지나가기로 했으니 병이 있어도 무시하고 밟고 지나갈 거야.'라는 식의 행동은 결국 본인을 무대에서 창조해내지 못한 것이다.

 

일상, 실제라면 말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관객들에게 바로 들키고 말 것이다. 

 

예술의 아이러니함이 여기서 나타나는데 같은 대사와 행동과 동작이어도 진실과 꾸며냄은 눈에 보인다.

 

 

 

배우는 언제나 진실해야 한다.

 

관객들 앞에서 꾸며내려는 사람들은 스스로 지치고 관객들도 지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관객들은 진실한 배우를 자연스레 찾아간다.